전체 글 7674

이상설의 십삼도의군(十三道義軍)과 성명회(聲明會)

작성일 : 2015. 09. 13. 07:10 ■ 이상설의 십삼도의군(十三道義軍) 창설 이상설은 1909년 7월 연해주에 도착한 뒤 밀산의 독립운동 기지 개척에 진력하는 한편, 의병 세력의 통합에도 힘썼다. 의병 세력의 통합은 한말 의병의 상징적 인물인 제천(堤川) 의병장(義兵將) 유인석(柳麟錫,1842~1915)과 함께 추진했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 1910년 6월 21일(음력 5.15)에 십삼도의군(十三道義軍)의 편성으로 구현되었다. 이들이 연해주(沿海州)와 간도(間島) 일대에서 함께 추진한 십삼도의군은 이범윤(李範允,1856~1940)이 이끄는 창의군(倡義軍, 또는 창의회)을 주축으로 편성되었다. 이상설은 십삼도의군을 창설하는 과정에 깊이 관여했을뿐만 아니라 외교통신원(外交通信員). 도통신(都通信)..

유인석(柳麟錫)

유인석초상 / 조규환 ■유인석(柳麟錫) [생졸년] 1842년(헌종 8)~1915년 대한제국기 정미7조약 체결 후 연해주에서 13도창의군의 도총재로 활약한 의병장. 위정척사론자로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여성(汝聖), 호는 의암(毅菴). 강원도 춘천 출신. 아버지는 유중곤(柳重坤)으로 14세 때 족숙인 유중선(柳重善)에게 입양되었다. 양가(養家)의 문벌을 배경으로 성장하였고, 이를 계기로 위정척사사상의 원류인 이항로(李恒老)의 문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항로의 문하에서 주로 김평묵(金平默)과 유중교(柳重敎)로부터 춘추대의정신(春秋大義精神)에 입각한 존화양이사상(尊華壤夷思想)을 철저히 익혔다. 1865년 만동묘철폐(萬東廟撤廢)와 1868년 병인양요로 대내외적 위기의식이 고조되어 갈 무렵에 이미 사상의 기본..